[진맥 세상] 치매, 길이 있다
수필가 성민희씨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난데없는 어머니의 교통사고는 나의 일상을 뒤죽박죽으로 차단시켰다. 92세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서 하시는 말. '야~들아, 이제 생각해보니 성공한 인생이란 별거 아니다. 돈도 명예도 아니고…건강이다.'…내 일상의 시간 배정 우선 순위를 다시 정리해야겠다." 돈도, 명예도, 외모도 늙어서는 다들 비슷해지고 오직 '건강 차별화'만 남으니 건강한 노년을 성공한 인생이라 부르는 데 이의가 별로 없겠다. 자기만은 꼭 피해갔으면 하는 질환이 있다면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는 치매가 아닐까. 인간의 존엄성을 서서히 잃어가는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들, 관계의 정을 지워버리고 맞이하는 죽음 앞에서 가족들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65세 이상 미국인 9명 중 한 명꼴로 치매에 걸리는 현실에서 더욱 암담한 것은 지금까지 효과적인 치매 치료제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제약회사들은 치료제 개발에 몰두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 가천대 서유헌 뇌과학연구원장은 "그동안 연구 결과 다수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원인에 집중된 치료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알츠하이머의 종말(The End of Alzheimer's)'. 이런 제목의 책을 보았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과장된, 실효성이 없는 내용일 것이라고 일축하지 않을까. 저자는 30여 년간 치매 예방과 치료법을 연구해온 전 UCLA 교수이자 뇌질환 전문 '벅 연구소(Buck Institute) 연구원인 데일 브레드슨(Dale Bredsen) 박사. 그는 지난해 영양, 스트레스, 호르몬, 수면 등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치매를 예방하고 인지기능을 개선시키는 프로그램 '리코드(ReCODE)'를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는 치매를 유발시키는 36가지 원인과 이를 제거하는 생활습관을 통해 인지 기능을 회복한 치유 사례들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만성염증 원인제거, 필요한 영양, 독소 예방 및 제거로 압축되는 그의 리코드 프로그램에 대해 '치료=약'의 고정관념에 갇힌 의료계는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치매 초기진단을 받은 한 의사는 "치료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리코드를 실천했다. 상태는 호전됐고 3년이 지났지만 악화되지 않았다. 이 의사는 지금 자신의 환자에게 리코드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어떤 신경학자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치료는 믿을 수 없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브레드슨 박사는 이같은 회의론에 대해 "불행하게도 의사들은 약 하나로 급성병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만성병을 치료하려 한다. 만성병 치료 과정은 체스 전략을 짜는 것과 비슷하다"고 약물치료의 맹점을 비판한다. 약물로 치매를 치료한다는 것은 지붕에 36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중 하나의 구멍을 막으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은 결국 다른 만성병과 마찬가지로 (식)생활습관 개선 만이 유일한 예방책이자, 치료법이라고 강조한다. 주요 내용을 추려보면 만성염증과 장 누수(leaky gut)를 부르는 설탕, 탄수화물(글루텐), 나쁜지방, 유제품 등을 줄이고, 유기농 식단으로 각종 살충제 등 독소를 차단하며,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파괴하는 항생제를 비롯, 뇌세포를 줄이는 콜레스테롤·고혈압 약 등 각종 약물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표지에 '뇌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부제가 결코 허풍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벅 연구소 http://www.buckinstitute.org 이원영 / 논설실장·한의학 박사